최근 한국 보험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다. 국내 주요 보험사의 2019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40% 감소했다. 대부분의 상장 보험사 주가는 지난해 신저가를 기록했고, 여전히 반등 기미가 없다. 보험 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악화되는 이유를 저금리·저성장·고령화 등 외부에서 찾는 이가 많다. 하지만 비슷한 여건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해외 보험사가 적잖은 것을 볼 때, 환경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저금리·저성장을 겪은 일본 보험 산업은 현재 15~20% ROE(자기자본이익률)를 꾸준히 창출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은행·증권사 등 다른 금융산업 ROE의 2배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마치 테크 기업처럼 고속 성장하고 주가도 급등하는 보험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는 40개 보험사가 있다.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 이 중엔 충분한 투자 재원과 지급여력비율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저자본 보험사도 적잖다. 더 큰 문제는 그 많은 회사가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를 것 없는 상품을 다를 것 없는 경로로 판다.
선진 시장의 대형 보험사들도 과거엔 지금 한국 보험사와 유사했다. 모든 상품과 판매 채널을 직접 운영했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엔 몸이 무거웠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의 대형 선도 보험사들은 과감히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미국 1위 생명보험사 메트라이프가 설계사 채널은 떼어 매각하고, 회사를 개인생명보험 전문 보험사와 법인보험 전문 보험사로 분리한 것이 좋은 예다. 벨기에 보험사 아토라는 개인·법인보험 영업을 전혀 하지 않고, 다른 보험사로부터 보험계약을 대거 인수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효율성을 내는 독특한 사업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보험과는 전혀 무관한 디지털 기업과 과감히 손잡고,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한 통합 설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중국 평안보험은 자사 보험 계약자에게 차량 관리 서비스나 원격의료 처방 서비스를 제공해 화제가 되었다. 평안보험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것을 직접 다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대신 전혀 다른 DNA를 가진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신사업의 주도권 및 고객 접점을 과감히 그 디지털 기업에 주고, 보험사는 보험 상품 제조·공급 및 보상 등 제한된 역할만 했다. 이를 통해 상품 개발, 보험요율 책정, 심사 등에 보험사의 통계 데이터뿐만이 아닌, 디지털 기업이 보유한 빅데이터 활용 및 인공지능(AI) 적용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소비자는 전보다 다양하고 저렴한 보험 상품을 훨씬 빠르게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청구·지급 과정도 간편해졌다.
이런 혁신이 일어나려면 보험사의 노력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 규제 정책도 꼭 필요하다. 선진 보험 시장의 감독기구는 보험사의 자율성을 확대해 건전 경쟁을 독려하되, 가입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 규제를 엄격히 하는 추세다. 안타깝게도 국내 규제 환경은 반대로 가고 있다. 상품·가격·자산운용 등 혁신이 절실한 분야의 규제는 고루하고 자본 규제는 선진국 대비 느슨하다.
우리 보험 산업은 여러 측면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2022년에는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된다. 그때까지 남은 2년이 변화를 위한 골든타임이다. 당국은 미래 지향적 정책으로 산업을 이끌고, 보험사는 절박하게 사업을 혁신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