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G 선정 `세계 50대 혁신기업` 위기에 강한 까닭은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기업들은 바닥 이후 회복기에 큰 폭 성장
코로나發위기에서 저력 드러내

공룡기업 혁신어렵다는건 낭설
자원분배·조직통합이 변수될뿐

헬스케어업계 이름올린 아마존
금융서비스 도전한 中알리바바
경계 파괴한 기업 속속 등장해

“위기일수록 혁신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가장 효과적인 때라고 말한다면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라`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년 수학능력시험 전국 1등 학생들이 `교과서 중심의 공부`가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듯, 위기 때에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증명이 가능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2020년 세계 50대 혁신기업`이 바로 그 증거다.

BCG는 2005년부터 혁신과 관련한 세계 최대 규모 연구를 수행해왔다. 올해 발표된 연구 결과는 전 세계 기업 임원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1000개 이상 기업의 경영 혁신 성과를 다룬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기업들이 경제 회복기에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사실 등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핵심적인 메시지들을 도출할 수 있었다.

2007년 BCG가 선정한 50대 혁신기업의 성과를 추적해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시장 평균보다 5.6%포인트 더 높은 연간 총주주수익률(TSR)을 보였다. 이들이 바로 다음해인 200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며 경쟁사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는 역사적으로 지난 25년간의 포천(Fortune) 100 업체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포천 100 업체 명단은 일반적인 시기보다 경제위기 때 명단에서 제외되는 기업 수나 순위 변동이 대비 약 40% 증가하며 이 시기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매출을 증가시킨 기업의 경우, 그렇지 않은 기업 대비 경제위기 이후에도 2~4배에 달하는 성장 속도를 기록해왔다.

지속 혁신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05년 이후 10차례 이상 50대 혁신기업 목록에 오른 기업은 전체의 12%인 20곳에 불과하다. 반면 전체 혁신기업 명단의 30%에 달하는 48개 업체는 딱 한 번 목록에 이름을 올린 후 다시 목록에 들지 못했다. 14번의 50대 혁신기업 발표에 모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과 더불어 삼성 등 단 8개뿐이었다. 삼성은 2005년 보고서 작성 이래 매년 혁신 순위권에 든 유일한 한국 기업이기도 하다.

혁신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올해 설문에 참여한 기업의 임원들 중 66%가 혁신을 3대 경영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그에 걸맞은 실제 지출로 연계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이 55%에 달했다.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혁신을 우선순위로 꼽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재원 투자를 실행하지 않았고, 30%의 기업은 혁신을 우선순위에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혁신에 전념한 기업들은 업계 대비 우수한 성과를 보이며 시장을 선도할 확률이 2배나 높았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혁신에 유리하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개 산업 약 1200개 기업의 혁신 성과를 분석한 결과, 기업 규모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 총 매출이 10억달러를 초과하는 대기업들도 혁신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리소스 분배 및 조직 통합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들 중 42%가 실제로 업계 대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더 이상 `회사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혁신에 전념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이미 기존 글로벌 대기업을 넘는 규모로 성장했으나 쉬지 않는 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긴 시간 비즈니스를 이어온 지멘스, 3M, BMW 등 굴지의 대기업들도 사업 모델을 과감히 바꾸는 등 뼈를 깎는 자구책을 통해 산업 평균 대비 높은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올해 보고서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산업 간 경계의 파괴였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귀사의 산업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이전에는 전혀 다른 산업군에 속했던 기업들이 응답에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아마존의 이름이 등장했고, 금융서비스 업계에서는 알리바바가 언급됐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의 TSR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업들의 TSR가 크게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산업별로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업이 타 산업 경계를 파괴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고, 이는 예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산업으로 인식되는 자동차 업계와 화학 업계, 그리고 산업재 업계 또한 타 산업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업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제조 기반의 기술 기업(가전·휴대폰 등)은 타 산업 경계를 무너뜨리는 업체보다 타 산업 업체에 의해 산업 경계가 무너지는 비율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혁신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이 지금의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삼성과 LG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각각 5위, 18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더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을 목록에서 보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위기 대응에 몰두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혁신을 위한 최적의 시기라는 점이다. 미래의 혁신 리더는 바로 지금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