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티클은 BCG와 국제 비영리 기구 헬로 투모로우(Hello Tomorrow)가 발간하는 ‘딥테크 분야의 기업, 정부 및 사회적 잠재력 시리즈’에 포함됩니다. 아티클 내용은 ‘딥테크 투자의 역설(The Deep Tech Investment Paradox)’ 보고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2020년 전 세계 생명공학자들이 개발한 ‘새로운 mRNA 기술’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빠르게 출시되면서, 우리는 인류가 빠른 속도로 혁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재료과학, 양자 컴퓨팅, 합성생물학, 탄소 포집, 우주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통합하여 얻어낸 거대한 혁신의 물결이 보여주는 일부만을 목격했을 뿐이다. ‘딥테크’라고 불리는 이 혁신의 물결은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그 파급력은 굉장할 것으로 보인다.
딥테크 벤처 사업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기초연구, 상업적 실용주의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이 사업은 현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재무적으로 실행 가능한 결과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기후 변화 위기는 소규모 핵분열 및 핵융합, 배터리 저장 기술 혁신(재생 에너지 실현 가능성 증대), 탄소 기반 소재(제조 공정에서 대기의 CO2 제거), 배양육 생산법과 같은 새로운 시도에 영감을 주었고, 주거와 소득의 불평등은 모듈식 주택 디자인과 혁신적인 건축 자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문제와 농약으로 인한 오염 문제는 합성생물학을 활용한 새로운 농업 분야를 창조했다. 환경을 위협하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신소재의 필요성은 인공미생물이라는 새바람으로 이어져, 분자 수준에서 물질의 제어 및 변형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운송 기술, 우주여행 및 위성, 정밀 농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수준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어떤 딥테크 벤처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투자가 가장 큰 수익을 낼지, 사업이 실현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딥테크는 이미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어떤 딥테크 벤처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투자가 가장 큰 수익을 낼지, 사업이 실현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딥테크는 이미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초기 투자 자본은 사회 및 재무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딥테크 유니콘 기업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수년 내 더 많은 벤처 기업이 성공할 것이다. 아울러 과거 산업 혁신의 뒤에는 전력과 내연 기관, 반도체 등이 존재했던 것처럼, 딥테크 또한 현대적인 투자 모델의 발전을 가속할 것이다.
딥테크 벤처의 차이
딥테크는 생산, 출시 및 상용화에 있어 구체적인 접근 방식을 특징으로 지닌다. 많은 기업이 이러한 프로세스에 각각의 명칭을 붙이고 있지만, 성공한 딥테크 벤처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기본 속성을 공통으로 가진다.
- 딥테크는 문제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딥테크 벤처는 중대하고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BCG가 연구한 딥테크 벤처 사업의 97%가 UN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중 하나 이상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 딥테크는 현존하는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술, 또는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딥테크 벤처는 첨단소재, 합성생물학,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등을 활용하여 해결책을 찾는다. BCG의 연구 대상인 딥테크 벤처 중 96%는 최소 두 개 이상의 기술을 사용하고, 66%는 하나 이상의 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차별화된 지식재산을 창출할 수 있다. 현재 딥테크 벤처의 약 70%가 제품 또는 서비스 관련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 딥테크는 비트(bit) 기반의 디지털 혁신에서 비트와 원자 기반의 물리적 디지털 혁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딥테크 벤처의 약 83%가 물리적 제품을 설계 및 구현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머신러닝, 고도의 연산기술 등을 사용하여 물리학, 화학 및 생물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 딥테크는 투자, 지원, 기초연구,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있어 새로운 형태인 ‘교차 조직적(cross-organizationl) 생태계’ 구축을 촉진한다. 혁신이 가지는 거대한 규모와 복잡성, 실행에 필요한 심도 있는 과학적 배경으로 인해 딥테크 벤처는 시작 단계부터 대형 기관의 지원 및 자금 투자가 필요하다. 딥테크에 있어서는 모 유명 기업의 일화처럼 대학을 중퇴한 두 명의 기업가가 차고에 앉아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재 약 1,500개 대학 및 연구소가 딥테크 기술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 (아래 “투자기관의 각성이 필요하다” 참고)
투자기관의 각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펀드 조직 및 투자자들이 딥테크의 가능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딥테크 분야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자 한다면 투자자들은 먼저 기존의 관행 및 투자 동향이 지닌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일반 벤처캐피털(VC)은 짧은 투자주기 때문에 딥테크 분야가 가져올 수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딥테크 벤처가 아직 부상하고 있는 분야인 탓에 VC는 딥테크 벤처 기술과 그 전망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반 VC는 딥테크 분야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자격을 갖춘 전문가를 고용해 안목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BCG와 헬로 투모로우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딥테크 기업가 중 81%가 “평균적으로 투자자들이 딥테크의 잠재력을 평가할 만한 과학적, 기술적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VC는 분산수익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10개의 벤처 중 적어도 1개가 성공하면 그곳에서 얻은 이익으로 나머지 9개의 실패한 벤처를 보상하기를 바라고, 다수의 유망한 투자처에 투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초기에 상당한 양의 자금이 필요한 딥테크 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전문 딥테크 VC는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딥테크 투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규모는 한정적이다. 딥테크 전문 VC 혹은 성장형 펀드는 평균적으로 1억 5백만 달러를 관리한다. 반면 일반적인 VC나 성장형 펀드는 평균 약 1억 4천 8백만 달러를 관리한다. 이로 인해 딥테크 펀드는 특히 시드 투자 이후에는 파트너 생태계를 구축하는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 투자한 딥테크 벤처를 온전히 지원하기에 부족하다.
사모펀드(PE)는 딥테크 투자를 영역 외 분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달리 딥테크 투자는 사모펀드에 적합한 투자 기회일 수 있으며, 이들이 딥테크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리스크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디지털 혁신 초창기에도 이와 비슷한 실패 사례가 있었다. 당시 많은 사모펀드가 자산이 손실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딥테크 벤처는 디지털 벤처만큼이나 역사를 새롭게 쓸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대하고 근본적인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여러 산업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여러 국부펀드(SWF)나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를 비롯한 LP(limited partners)는 기존에 있던 좋은 평판의 펀드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수년에 걸쳐 구축한 관계를 보유한 안정적인 펀드 매니저 네트워크가 내리는 보수적인 선택이다. 2015년 평균 7억 달러였던 바이아웃 펀드(buyout fund) 규모가 2019년 16억 달러로 점차 성장하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일부 LP는 이와 같은 구조적인 장애물을 넘어 딥테크 부문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국부펀드는 환경적, 사회적 과제 등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패밀리오피스는 이미 장기자본의 고수로 정평이 나 있으며, 10년에서 20년에 걸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딥테크에서도 충분히 성공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 투자 생태계에서 입지를 키워왔으며, 딥테크 인큐베이터나 인수 후보, 합작 법인(JV)을 키울 만한 적절한 후보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한 내부 R&D 역량과 유연성을 보유한 기업 투자자는 사실 거의 없다. BCG의 연구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딥테크 벤처의 47%가 “기업은 딥테크 벤처와 협력하기에 민첩성(agility)이 부족하다”고 답한 바 있다. 더욱이 기업의 R&D 활동은 파괴적 혁신보다는 점진적 발전에 중점을 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초의 혁신이 “이곳에서 발생하지 않았음”과 같은 태도를 선호하는 문화를 여러 기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외부의 아이디어나 도움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벤처 기업의 성과가 시장에서 증명될 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가치 판단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와 연구 기관의 자금은 지금껏 딥테크 투자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과거 혁신의 물결이 찾아왔을 때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공공부문 기관과 대학, 대규모 비영리 단체는 발전 초기에 있는 벤처에 보조금을 지원했고, 민간부문 기관보다 더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공공기관과 대학 조직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딥테크에 호의적인 시장 환경이 형성되도록 돕는다. 이들은 초기 상품을 구매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하여 가격과 비용을 낮추며, 연구실이나 기타 자산을 제공하여 연구자를 지원한다. 인프라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한 규제기관, 정계 조력자 역할을 모두 맡아 은행과 기업, 지자체, 협회, 개인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를 한데 모은다. 단순히 재정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연구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벤처 투자가와 같은 상업적 관계자와 교류한다면 이들은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가 조성한 벤처 펀드, 더 엔진(The Engine)에 따르면 미국 내 보조금 지원 계획 대부분이 실패하는 이유는 정부가 VC처럼 기업가에 접근할 수 없을뿐더러 이들에게 영리적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일부 주요 투자자들은 이미 딥테크를 통해 수익을 내고 있으며, 다른 투자자들도 큰 관심을 보인다. 딥테크에 투입된 자본의 규모는 2016년 150억 달러에서 2020년 600억 달러 이상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반면, 글로벌 투자 커뮤니티는 아직 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딥테크 투자는 여전히 틈새 투자로 간주하며, 지금껏 꾸준한 양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재 딥테크 투자의 ‘드라이 파우더(dry powder, 투자 대기자금)’는 유례없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추정치만 약 1.9조 달러에 이르는 사모펀드와 VC, 성장자본(growth capital)이 제로금리나 다름없는 채권을 넘어 더 높은 자본 수익률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도 많은 기회가 간과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딥테크 투자액의 2/3는 인공지능 및 합성생물학 분야로 향했고, 나머지 1/3만이 그 외 분야에 투자되었다. (보기 1 참조)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치우쳐 있는데, 투자액의 75%가량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유럽, 중국 및 기타 국가에서의 벤처 투자자금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새로운 혁신의 물결에 올라탈 기회를 놓칠뿐더러 영리하게 움직이는 경쟁 투자자에게도 뒤처진다. 한편 딥테크 벤처들은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반 대중 역시 딥테크 혁신이 가능하게 할 기후 문제 해결 등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그렇다면 딥테크 벤처와 투자자본이 입장 차이를 해결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다음 4가지 역설을 해결함에 따라 찾을 수 있다. (보기 2 참조) 첫째, VC의 투자 전력과 어느 정도 상반되지만 사실 투자자의 사고는 첨단과학이나 획기적인 기술에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다. 둘째, 리스크와 기회의 문제가 있다. 딥테크 투자는 리스크가 큰 투자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이 점을 이유로 투자하지 않는 현실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된다. 셋째, 딥테크 투자에는 자금 조달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혁신으로 가는 길의 장벽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모순되는 현상이 있다. 넷째, 딥테크 투자의 대기자금 규모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막대하지만 정작 투입될 적절한 분야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역설을 해결하려면 투자자는 딥테크에 관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벤처 기업 리더들이 직면한 어려움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대학이나 정부 외에 가능한 투자자본을 찾아서, 비영리단체, VC 및 개인 투자자들과 진정한 생태계를 형성해야만 한다. mRNA 백신처럼 이들에게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문명을 형성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역설 1.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의 투자 마인드가 더 낫다
《혁신 경제 안에서 자본주의의 행보(Doing Capitalism in the Innovation Economy)》의 저자이자 벤처 투자가 겸 경제학자인 윌리엄 제인웨이(William Janeway)는 혁신 투자의 일선에는 가장 이상적으로 ‘역발상 투자(현재 시장 분위기에 반대되는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미래를 보고 딥테크에 투자하려면 과거의 투자 마인드를 적용해야 한다.
1960~70년대 지금의 디지털 기술이 처음 등장하면서, 엔젤투자자들과 VC는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취했다. 이는 반도체, 개인용 컴퓨터, 통신 장치, 소프트웨어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 개발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이와 같은 전략으로 많은 VC가 나날이 커지는 디지털 분야를 선도하는 투자자로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많은 투자 기업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변화했다. 오늘날의 투자 기업들은 분산수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절대 초기에 단일 투자로 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으며, 여러 벤처에 분산투자한 다음 수익률을 보이는 기업 위주로 투자자금을 증액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는 결국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을 걷는 점진적인 투자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초기에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딥테크 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많은 투자자가 혁신에 열려 있는 것처럼 언뜻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획기적인 벤처 사업일지라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딥테크 벤처가 낯설게 느껴질 수는 있다. 딥테크 벤처는 일반적인 디지털 스타트업 업계 인맥이나 네트워크 없이, 대중투자나 학술 및 연구 시설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으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또한 다른 분야처럼 대학 동문 기업가들이 이끄는 사업이 아닌, 박사후연구원이나 그들의 전 세계 동료들이 동참하여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이 이전의 투자 이력을 떠올리며 더욱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중점을 유지한다면 딥테크 투자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투자자들이 이전의 투자 이력을 떠올리며 더욱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중점을 둔다면 딥테크 투자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곧장 다른 투자처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벤처 기업과 함께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포용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또한 투자자들은 근본적이고 시급한 사회 문제에 중점을 둔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공동투자자, 대학, 공공기관, 기업 등의 다양한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만큼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바이오 · 의료 투자 VC인 인디바이오(IndieBio) 설립자 아르빈드 굽타(Arvind Gupta)는 “우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에 투자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딥테크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투자할 벤처 기업을 물색해야 한다. 다른 자본이나 투자자들을 매혹할 만한 명확한 문제의식과 매력적인 요소를 갖춘 딥테크 사업에 집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이를 통해 투자자들이 관심과 투자자금을 전적으로 투입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을 도우면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 딥테크 벤처에서야말로 ‘필요가 혁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역설 2. 투자하지 않는 것이 투자하는 것보다 더 큰 리스크이다
투자자들은 딥테크 벤처의 리스크와 내재한 취약성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제기한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as-a-Service) 오퍼링 · 플랫폼과 같은 순수 디지털 벤처와 달리, 딥테크 벤처는 진입 장벽이 더 높다. 상용화까지의 과정이 더 길고, 초기 투자 비용도 크며, 해당 분야에서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조차 찾기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투자자들이 딥테크 기업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나 실용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자에서 리스크 완화 전략을 토대로 좀 더 생각해본다면, 딥테크 벤처는 순수 디지털 벤처보다 오히려 리스크가 낮다고 볼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제 딥테크가 가지는 리스크는 “합리적이면서도 가변적인 가격으로 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기술의 실행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질문이 된다. 투자자들은 딥테크가 다루는 기술과 문제에 익숙하지 않고, 이러한 문제를 접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딥테크가 가진 매력 요소를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디지털 벤처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 큰 리스크였던 것과 같은 이유로, 지금 딥테크 투자를 피하는 것은 리스크가 가장 큰 결정이다. 당시 많은 투자자가 디지털 벤처를 낯설게 느꼈고, 2000년 닷컴 버블의 붕괴로 불안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오늘날 업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기업들의 성장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때 끈기 있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업계 관련 지식을 공부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투자자들이 결국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딥테크 분야에서 일찌감치 자리를 선점하는 투자자는 빠른 성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고, 미래에 딥테크 투자가 더욱더 매력적인 투자 기회로 발전했을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화학, 농업 업계의 기존 기업들은 딥테크의 물결에 합류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딥테크는 과학과 기술,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점점 더 발전하고 있고, 그 입지는 앞으로 더 굳건해질 것이다. 과거 비슷한 기술 혁신과 마찬가지로, 딥테크 벤처 기업은 현상 유지에 힘쓰면서 기존 업계의 선도기업들을 무너뜨리고자 할 것이다.
BCG와 헬로 투모로우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딥테크 투자자의 69%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리스크뿐만 아니라 시장 리스크가 ‘너무 높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이 관련 전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투자한 노력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딥테크의 잠재력을 평가하기 위해 투자자의 79%가 외부 전문가, 42%는 박사학위 취득자, 37%는 석사 수준의 이공계 학위 취득자를 고용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다른 투자자들이나 기업 리더, 규제 기관, 대학 등과 정기적인 모임을 하며 공동 투자자를 찾거나 더 큰 규모의 벤처 협업을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딥테크 생태계는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더 많은 투자자가 투자에 참여해 벤처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제는 효율적인 리스크 관리법이 존재한다. 투자자들은 이를 잘 숙지하여 딥테크 벤처가 시장 실패, 기술 과잉 등의 리스크를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보기 3 참조) 예를 들어,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는 방법론에서 차용한 ‘설계-구현-테스트-학습(Design-Build-Test-Learn, DBTL) 주기’ 접근 방식을 적용할 경우, 비록 새로운 분야의 R&D라 할지라도 벤처 기업이 발전을 지속하고, 테스트 속도를 높여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을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제품 출시 기간을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줄이는 데 성공한 합성생물학 관련 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연구실에서 개발에 성공한 딥테크 기술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지식재산으로 보호되며, 이러한 제도 덕분에 경쟁을 제한하면서 빠르게 규모를 키울 수 있다.
개발 초기부터 제조 및 출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가치와 비용을 고려하여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다. 설계 단계에서 비용 분석을 먼저 시행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벤처 사업 전반의 운영에 앞서 고객 가치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SILA Nanotechnologies)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배터리 구성 요소에 벌크 합성 반응기(bulk synthesis reactor)를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확장성을 높인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가치가 가장 높은 휴대폰 배터리 분야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역설 3. 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은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한다
딥테크 벤처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자금 부족이다. 초기 R&D 비용이 큰 탓이다. 하이브리드 전기 비행기, 핵폐기물 처리 기술 같은 솔루션을 적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게다가 MVP 개발로 가는 극초기 단계에서는 대부분 기술 리스크나 가치를 고려한 설계(DtV, Design-to-Value) 방식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므로, 딥테크 벤처 기업은 초기 투자 라운드(시드 투자, 시리즈 A, 시리즈 B)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딥테크 혁신을 방해하는 장벽은 점차 무너지고 있다. DNA 분석, 프로토타이핑, 시뮬레이션 등에서 측정되는 R&D 비용은 사실상 10년 전의 액수일 뿐이다. 설비 시설에서 디스케일링 작업을 실시하면 공장 셋업 비용을 줄이고, 점진적인 자본 확보가 가능하며, 유지보수 효율성을 최적화할 수 있어 제품의 시장 출시 주기가 단축된다.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 원자력 스타트업 시보그 테크놀로지스(Seaborg Technologies)의 부유식 원자력 발전소, 미국 3D프린팅 기업 데스크탑 메탈(Desktop Metal)의 적층 제조 시스템이 있다. 기술 개발 시간 역시 빠르게 단축되고 있다. 특히 양자컴퓨터의 예상 처리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데, 영국의 인공지능 개발 기업 딥마인드(DeepMind)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알파폴드2(AlphaFold2)’는 지난 50년간 생명공학 분야의 난제였던 단백질의 3D 접힘 구조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풀어냈다. 향후 수년간 딥테크 R&D 비용은 어쩌면 다른 분야의 기업들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고, 기업의 성장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많은 투자자본이 딥테크 투자로 몰릴 수 있다.
반면, 딥테크 투자를 희망하는 투자자들이 마주한 진입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딥테크 벤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자본은 대부분 LP가 선호하는 견고한 평판과 안정적인 규모의 레거시 펀드에 묶여 있기 때문에, 초기 단계 이후 라운드에서 딥테크 벤처가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요인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각종 딥테크 투자 수단이 등장하고 있으며, 비교적 정적이고 비어 있는 곳이 많았던 투자 환경이 점차 활발하고 다이내믹한 투자 생태계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기 4 참조) 장기적인 어댑티브 캐피털(adaptive capital)이나 벤처 스튜디오 외에도 딥테크 VC와 사모펀드가 생태계에 흡수되면서 딥테크 벤처 기업의 투자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보면, 딥테크 VC 펀드는 수명에 따라 10~15년, 규모에 따라 1억 5천만~3억 달러로 구분된다. VC는 선정된 앵커투자자, 여러 문화와 전문 분야를 배경으로 지닌 구성원들, 연구출판 기관, 그 외 광범위한 네트워크(대학, 기업, 정부 기관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VC가 본래 지니는 핵심 가치인 ‘변혁적 비즈니스에 집중한 야심 찬 비전’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롤링펀드(rolling fund)나 기회펀드(opportunity fund), 부가판권 시장의 성장 등 장기적인 타임라인을 형성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투자자금 조달 장벽을 낮춰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벤처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주식 시장을 넘어 수익 기반 자금 조달, 탄소배출권, 상업적 수익으로 확보한 벤처 부채와 같은 다양한 투자 수단으로 딥테크 벤처의 자금 조달 장벽을 극복할 수도 있다.
역설 4. 투자자본은 많지만, 투자자의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오늘날, 무려 1조 9천억 달러라는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자본이 투자수익을 꿈꾸고 있지만, 과거보다 안전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투자처는 줄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주식이나 채권마저 가뜩이나 낮은 수익률이 점점 더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최근 들어 급증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붐은 이러한 문제의 시급성을 드러낸다.
바로 이 격차를 메우는 데 딥테크 벤처가 활용될 수 있다. 자금 조달 구조와 리스크 관리 기법을 적절히 조정하면, 딥테크는 더 많은 투자자를 매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딥테크 벤처는 여전히 자본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설문 응답자는 “우리 벤처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우리 기술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투자제안서는 논문이 아님에도 딥테크 분야의 많은 과학자가 VC 세계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증거에 기반한 확실성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최종적인 적용사례나 비즈니스 잠재력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복잡한 과학적, 기술적 특징에 관해서만 설명하려 한다.
미국 스타트업 VC 프라임 무버스 랩(Prime Movers Lab)의 설립자 다킨 슬로스(Dakin Sloss)는 “딥테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본 집약적이며, 리스크가 크다는 3가지 큰 오해를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딥테크에 관한 정확한 내러티브를 재구성하여, 벤처 기업부터 VC 및 사모펀드까지 투자 생태계 전반에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투자 생태계에서 과소평가된 LP에 관한 내러티브를 구성해야 한다.
딥테크 내러티브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핵심 메시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 리스크가 크지만,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이는 문제 지향적 마인드, DtV / DtC 방식, DBTL 주기의 가속화, IP 보호 등의 전략으로 해결할 수 있다.
- 평균 초기 투자 비용이 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용이 조정될 수 있다. 이때 투자 타임라인과 전반적인 자금 필요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딥테크 벤처는 평균적으로 초기에 큰 자금을 필요로 하지만, 이후 비용은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 범위 안에 있다. 이는 특히 경쟁기업을 제치기 위한 싸움이나 시장 점유를 위해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한 디지털 및 SaaS 벤처와 비교했을 때 도드라진다. 딥테크 벤처가 처음 상업적 수익을 달성하면, 지분 희석 방지 조항을 더해 투자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다. (자료 5 참조)
- 딥테크는 이미 인상적인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딥테크 벤처의 성공 사례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자료 6 참조) 따라서 실적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하면 벤처 사업을 더 널리 홍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우버(Uber)나 딜리버루(Deliveroo)와 같은 모빌리티 기업을 이을 차세대 벤처에 관심이 집중되었다면, 최근에는 수억 달러의 스마트머니(smart money)가 딥테크에 유입되고 있다(다만 관심도는 낮다). 그러한 자본은 아무도 모르게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종국에는 기업의 성공과 기업공개(IPO)로 이어진다. 푸드테크 VC 피프티 이어스(Fifty Years)에 의하면 현재 딥테크 벤처 기업의 포트폴리오상 주주가치는 3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최소 8개 기업이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딥테크 벤처가 지닌 기회
딥테크 투자는 현재 매우 중요한 기점에 놓여있다. 잠재적인 성장 가치와 비교하면 현재 시장에서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미국 외 지역에서는 딥테크 벤처가 유니콘 기업 위주의 디지털 세계에서 그만큼의 주목을 받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격차가 더욱 크다. 현재의 저렴한 가치, 앞으로의 성장 속도를 고려할 때 이는 VC 및 초기 투자자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현 추세가 계속된다면 딥테크 투자액은 2025년 약 1,4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투자자를 위한 새로운 내러티브, 투자자 및 딥테크 기업가를 위한 새로운 기회, 기업 및 투자자 생태계, 진화한 자금 조달 구조, 리스크 관리 기법, 딥테크에 우호적인 마인드가 뒷받침되어 새로운 투자 모델과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투자액은 2,000억 달러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기 7 참조)
인류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딥테크 벤처는 사회를 새로운 차원의 비트 및 원자 기반으로 이끌고 있다. 딥테크는 아직 태동의 시기를 거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규모와 형태로 혁신의 물결이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물결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투자 생태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리스크를 관리하여, 딥테크가 지닌 거대한 혁신의 힘을 이루어내야 할 재무적,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