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이 왜 중요한가요 : 여행∙항공 등과 더불어 코로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또 직접 받은 산업이 유통입니다. 그 중에서도 온라인 식료품에 대한 영향이 컸습니다. 국내 전체 유통 시장(350조원) 중 식료품 시장(110조원)의 규모가 가장 큽니다. (유로모니터, 2019년 기준) 또한 TV는 10년에 한 번 구매하지만 식료품은 어제 샀어도 내일 또 사야 하는 품목입니다. 반복구매가 일어나고 필수재인 식품 카테고리는 유통기업 입장에서 사활을 거는 영역입니다. 여기에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 왔으니 기존 시장 지배자들은 마음이 급하고, 신규진입자들은 어쩌면 단 한번 뿐일지 모르는 기회를 맞아 분주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보기 어려운 시장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요.
📱 40대, 온라인 식품 구매 큰손으로 변신 : 코로나 전후의 월평균 온라인 쇼핑 거래액을 비교하니 식료품이 93%나 증가했습니다.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게 되자 식재료 구매가 늘고, 매장에 가기를 꺼리니 온라인 장보기 수요가 폭증한 것은 당연합니다. 보다 흥미로운 건 코로나를 계기로 온라인 장보기를 맛본 중장년층이 떠나지 않고 계속 이용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중장년은 식료품 구매의 핵심 고객인데, 그동안은 쉽게 온라인으로 포섭되지 않았습니다. 품질을 중시하는 고기, 수산물, 과일 등의 먹거리는 눈으로 확인하는 걸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여파로 어쩔 수없이 온라인 주문을 해 봤는데 ‘어? 괜찮네?‘ 라는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40대가 순식간에 온라인 장보기의 고객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 정처없이 떠돌던 온라인 장보기, 마침내 정착을 시작하다 : 코로나로 급격히 달라진 식료품 소비자의 행태는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대형 마트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또 온라인 식료품 구매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충성고객이 등장했습니다.
최근까지 식료품 구매자들은 특정 온라인 채널에 만족하지 못해 여러 개의 앱을 돌아가며 쓰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식품은 주로 집근처 오프라인 마트에서 사되 일부 온라인을 병행하고, 온라인 구매시엔 쿠팡에서 직구 식품과 가공식품을 주문하고 다른 건 이마트 롯데마트∙ GS프레시 할인행사를 돌아가며 쓰고, 프리미엄급 식품이나 소량은 마켓컬리에 주문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장보기 횟수가 늘어나고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레 한두개 앱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식품 배송 유료화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 입니다. 극단적인 배송의 편리함을 경험하자 월회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확 허물어졌습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식료품 배송의 핵심은 ‘빨리‘ 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새벽 배송이 무섭게 성장한 것은 새벽에 받으면 더 신선해서가 아니라 이때는 무조건 집에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 새롭게 주목받는 편의점 : 그럼 이제 오프라인 유통은 종말을 맞이하고, 전부 온라인으로 물갈이 되는 것일까요? 유통시장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갔음은 분명하며 이는 코로나 이후에도 되돌아가지 어려울 흐름입니다. 그러나 온라인이 모든 수요를 다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그 중에서도 편의점의 역할은 온라인으로는 완벽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는 이미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의 행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편의점이란, 지나가다 들러서 음료나 담배 같은 걸 사고, 들어간 김에 추가로 소소한 충동구매를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멀고 북적이는 대형 마트 대신 가급적 집 근처를 선호하는 경향과 온라인 구매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수요 두 가지가 맞물려 편의점과 동네 수퍼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또 초근거리 배송의 편의성에 대한 좋은 경험이 생기면서, 편의점 역시 온라인 주문 및 배송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주문한지 30분만에 문앞에 배달 되니 신세계다“라는 것입니다.
📈 아마존고, 편의점의 미래? : 다만 미래의 편의점은 지금과는 다를 것입니다. 영국 대형 유통기업 테스코의 소형 점포 혁신 전략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테스코는 이미 2015년, 기존 편의점의 정형화된 틀을 벗고 점포입지 및 고객 특성에 맞춰 개별화를 감행했습니다. 한국의 편의점이 CU이건 세븐일레븐이건, 서초구에 있건 세종시에 있건 대동소이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테스코 익스프레스‘는 점포 입지와 주요 이용 고객의 특성에 따라 매장을 다르게 꾸몄습니다. 고소득층 밀집 주거지인 첼시에 있는 점포는 고가 와인 등 프리미엄 제품이 매대를 채웠습니다. 대학가에 있는 점포는 간편조리식이 많이 진열돼 있고, 직장인 밀집지인 옥스포드 거리의 매장에는 점심용으로 바로 들고나가 먹기에 맞춤한 델리 코너가 한가운데 자리합니다.
아마존의 무인매장 아마존고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바코드를 찍는 계산대 없이 물건을 집어 가면 자동결제가 이뤄지는, 이른바 ‘그랩앤고(grab and go)’ 모델입니다. 핵심 기술은 비디오 분석입니다. 천정 등에 설치된 수백대의 카메라가 고객의 동작 정보를 그러모으고 AI(Artificial Intelligent)가 이를 분석합니다. 2018년 시애틀에 시범 점포를 냈고 현재 미국의 4개 도시에서 18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는데, 2021년에는 3000개까지 늘린다고 합니다. 아마존고는 비슷한 규모의 소형 편의점 보다 50% 많은 수익을 낸다고 합니다만, 존재 이유는 점포에서 물건을 판매해 창출하는 수익이 아닙니다. 온라인에선 파악할 수 없는 고객 행동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게 핵심 목적입니다. 이들은 100만 명의 데이터 보다, 한 명의 100만 가지 데이터가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소형 편의점의 모습을 한, 아마존의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 거점인 것입니다.
미국 최대 드럭스토어 체인 월그린 또한 눈여겨볼 만한 사례입니다. 월그린은 지난해부터 일부 매장에 스마트 디스플레이 겸 카메라와 센서를 내장한 디지털 광고판을 설치합니다. 카메라와 센서가 점포를 방문한 고객의 연령, 성별 등을 추정하고 냉장고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나 기타 날씨 등 외부 변수를 조합해 이 사람이 구매할 확률이 높을 것 같은 상품의 광고를 송출합니다.
오프라인 점포를 일종의 미디어로 활용하려는 것이 월그린의 의도입니다. 매장 방문 고객에게 최적의 맞춤 광고를 보여주고, 해당 광고의 광고주 그러니까 코카콜라나 네슬레 등에 광고비를 받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아마존고나 월그린은 오프라인 점포를 더 이상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새로운 목적의 공간으로 재정의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크게 가속을 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같은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으며 되돌릴 수 없는 흐름입니다. 갑자기 현실이 되어 닥친 유통의 미래는 지금과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대기업이 여전히 그러할지, 루키가 판을 뒤집을지 흥미롭습니다.